피그먼트 잉크, 수채, 컬러 펜 / 종이
프린트 에디션
누군가 현실을 말해 주기 전, 우리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꿈을 꾸었습니다.
소녀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강 건너에는 이미 그녀의 꿈이 모습을 갖추고 그녀를 기다립니다.
어쩌면 모든 미래는, 먼저 꿈꾸는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Medium
Pigment ink, watercolor and colored pen on paper
Print Edition Size
Before someone told us what was realistic, we dreamed without asking for permission.
A young girl stands between the world she knows and the one she imagines. Beyond the river, her dreams have already become real. They are waiting for her long before she believes she can reach them.
Perhaps every future begins this way—with the courage to imagine it first.
Before Someone Told Us — To Listen (귀 기울이다)
2026 · A3 (29.7 × 42.0 cm)
피그먼트 잉크, 수채, 컬러 펜 / 종이
프린트 에디션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기 전, 우리는 조용한 것들의 언어를 이해했습니다.
숲은 말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새와 나무, 물과 침묵으로 대답합니다.
소녀가 귀를 기울일수록 그녀의 머리카락은 연못이 되고, 그 위에는 새로운 생명이 피어납니다.
자연은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듣지 않을 뿐입니다.
Medium
Pigment ink, watercolor and colored pen on paper
Print Edition Size
Before someone told us to grow up, we still understood the language of quiet things.
The forest does not speak with words. It answers through birds, water, trees and silence. As she listens, her hair slowly becomes part of the pond where new life begins to bloom.
Perhaps nature never stopped speaking. Perhaps we simply stopped listening.
Before Someone Told Us — To Imagine (상상하다)
2026 · A3 (29.7 × 42.0 cm)
SOLD OUT — 경매 낙찰
피그먼트 잉크, 수채, 컬러 펜 / 종이
프린트 에디션
누군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전, 모든 가능성은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평범한 상자 안에는 끝없는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음악과 이야기, 용기와 상상이 함께 흘러나오고, 왕관은 조용히 곁에 놓여 있습니다.
가장 큰 보물은 아직 살아 보지 않은 우리의 가능성일지도 모릅니다.
Medium
Pigment ink, watercolor and colored pen on paper
Print Edition Size
Before someone told us who we should become, every possibility still belonged to us.
Inside an ordinary box lies an endless future. Music, stories, courage and wonder unfold together, while the forgotten crown rests quietly beside her.
Not every treasure is something we find. Some treasures are the lives we have not yet lived.
Before Someone Told Us — To Grow (자라나다)
2026 · A3 (29.7 × 42.0 cm)
SOLD OUT — 경매 낙찰
피그먼트 잉크, 수채, 컬러 펜 / 종이
프린트 에디션
실패를 끝이라고 배우기 전, 우리는 다시 씨앗을 심었습니다.
모든 꽃이 정원에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꽃은 꺾이고, 어떤 꽃은 꽃병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꽃을 같은 마음으로 돌봅니다. 사랑하며 키운 것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Medium
Pigment ink, watercolor and colored pen on paper
Print Edition Size
Before someone told us that failure meant the end, we simply planted another seed.
Not every flower remains in the garden. Some are broken, some are gathered, some continue to bloom elsewhere. Yet she cares for each one with the same quiet devotion.
Nothing that has been loved is ever truly lost.
Before Someone Told Us — To Become (나다워지다)
2026 · A3 (29.7 × 42.0 cm)
SOLD OUT
재료
피그먼트 잉크, 수채, 컬러 펜 / 종이
프린트 에디션
누군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전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마음속에서 조용히 함께 살아갑니다.
경이로움 또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맞이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Medium
Pigment ink, watercolor and colored pen on paper
Print Edition Size
Before someone told us who we had to become we were already becoming ourselves.
The child she once was still lives within her—not as a memory, but as a quiet companion. Together they remind us that wonder is not something we leave behind. It simply waits to be welcomed home again.
Perhaps growing up was never about becoming someone new but about finding the person we were all along.
Coordinates
37.22698, 127.17048
나에게 작업실은 하나의 고정된 공간이 아니다. 풍경 앞에 머무르고 붓을 드는 순간 그곳은 곧 작업실이 된다. 이 연작은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작업실의 풍경을 기록한 것이다.
회화 속에는 비어 있는 휴대용 이젤이 등장한다. 전시장에는 실제 휴대용 이젤을 함께 설치해 평면과 설치를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한다. 이 설치는 화면 속 빈자리를 현실의 공간으로 확장하기 위한 장치다. 화면 속에 의도적으로 남겨 둔 빈자리는 실제 사물을 통해 현실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실제 사물은 다시 화면 속 풍경으로 관객을 이끈다. 회화 속 풍경은 전시장으로 확장되며 관객은 화면 안과 밖을 넘나들며 하나의 연속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비어 있는 이젤은 내가 머물렀던 자리의 흔적이자, 관객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겹쳐볼 수 있는 빈자리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풍경과 작가 그리고 관객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감각을 공유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작업실 2
2024 · 80.3x116.8cm
SOLD OUT
Coordinates
37.22680, 127.17049
나에게 작업실은 하나의 고정된 공간이 아니다. 풍경 앞에 머무르고 붓을 드는 순간 그곳은 곧 작업실이 된다. 이 연작은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작업실의 풍경을 기록한 것이다.
회화 속에는 비어 있는 휴대용 이젤이 등장한다. 전시장에는 실제 휴대용 이젤을 함께 설치해 평면과 설치를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한다. 이 설치는 화면 속 빈자리를 현실의 공간으로 확장하기 위한 장치다. 화면 속에 의도적으로 남겨 둔 빈자리는 실제 사물을 통해 현실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실제 사물은 다시 화면 속 풍경으로 관객을 이끈다. 회화 속 풍경은 전시장으로 확장되며 관객은 화면 안과 밖을 넘나들며 하나의 연속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비어 있는 이젤은 내가 머물렀던 자리의 흔적이자, 관객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겹쳐볼 수 있는 빈자리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풍경과 작가 그리고 관객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감각을 공유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0~9세, 10~19세, 20~29세의 세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마다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순수함과 동심을 상징하는 기억과 사물들을 한 화면씩 구성했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시기를 다루지만, 나란히 배치하면 하나의 이미지처럼 연결된다. 이를 통해 각각의 기억과 경험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며 계속 이어져 왔다는 삶의 연속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업 방식에는 작가가 지닌 두 가지 정체성이 반영되었다. 과거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그림을 좋아했고, 현재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작가는 이 두 영역을 결합해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표현 방식을 고민했다.
그 결과 패션 제작 과정에서 가봉을 위해 사용하는 광목 천, 패턴 작업, 재단선과 표시선을 회화의 재료와 과정으로 가져왔다. 광목 천 위에 패턴을 그리듯 스케치한 뒤, 핸들 자수 재봉틀로 실을 박으며 그림을 완성했다. 즉 붓과 물감 대신 천과 실, 재봉틀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특히 자수는 작가에게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천에 한 번 박힌 실은 쉽게 되돌릴 수 없으며, 작업 과정에서 생긴 엉킴과 뜬 땀, 어긋난 선과 실수 역시 이미 지나가 버린 삶의 순간과 닮아 있다. 작가는 이를 의도적으로 수정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겼다. 완벽하지 않은 흔적까지도 현재의 자신을 만든 삶의 일부라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10-19
2026 · 91 * 72.7 cm
작가는 자신의 삶을 0~9세, 10~19세, 20~29세의 세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마다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순수함과 동심을 상징하는 기억과 사물들을 한 화면씩 구성했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시기를 다루지만, 나란히 배치하면 하나의 이미지처럼 연결된다. 이를 통해 각각의 기억과 경험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며 계속 이어져 왔다는 삶의 연속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업 방식에는 작가가 지닌 두 가지 정체성이 반영되었다. 과거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그림을 좋아했고, 현재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작가는 이 두 영역을 결합해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표현 방식을 고민했다.
그 결과 패션 제작 과정에서 가봉을 위해 사용하는 광목 천, 패턴 작업, 재단선과 표시선을 회화의 재료와 과정으로 가져왔다. 광목 천 위에 패턴을 그리듯 스케치한 뒤, 핸들 자수 재봉틀로 실을 박으며 그림을 완성했다. 즉 붓과 물감 대신 천과 실, 재봉틀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특히 자수는 작가에게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천에 한 번 박힌 실은 쉽게 되돌릴 수 없으며, 작업 과정에서 생긴 엉킴과 뜬 땀, 어긋난 선과 실수 역시 이미 지나가 버린 삶의 순간과 닮아 있다. 작가는 이를 의도적으로 수정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겼다. 완벽하지 않은 흔적까지도 현재의 자신을 만든 삶의 일부라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20-29
2026 · 91 * 72.7 cm
작가는 자신의 삶을 0~9세, 10~19세, 20~29세의 세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마다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순수함과 동심을 상징하는 기억과 사물들을 한 화면씩 구성했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시기를 다루지만, 나란히 배치하면 하나의 이미지처럼 연결된다. 이를 통해 각각의 기억과 경험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며 계속 이어져 왔다는 삶의 연속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업 방식에는 작가가 지닌 두 가지 정체성이 반영되었다. 과거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그림을 좋아했고, 현재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작가는 이 두 영역을 결합해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표현 방식을 고민했다.
그 결과 패션 제작 과정에서 가봉을 위해 사용하는 광목 천, 패턴 작업, 재단선과 표시선을 회화의 재료와 과정으로 가져왔다. 광목 천 위에 패턴을 그리듯 스케치한 뒤, 핸들 자수 재봉틀로 실을 박으며 그림을 완성했다. 즉 붓과 물감 대신 천과 실, 재봉틀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특히 자수는 작가에게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천에 한 번 박힌 실은 쉽게 되돌릴 수 없으며, 작업 과정에서 생긴 엉킴과 뜬 땀, 어긋난 선과 실수 역시 이미 지나가 버린 삶의 순간과 닮아 있다. 작가는 이를 의도적으로 수정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겼다. 완벽하지 않은 흔적까지도 현재의 자신을 만든 삶의 일부라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인형뽑기 기계 속에는 보아뱀이 없나요? (No Boa Constrictor in the Claw Machine?)
2026 · 190 x 90 cm
SOLD OUT
쨍한 네온 조명 아래 뒤엉킨 인형들. 내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한 순간 집게 끝에서 인형이 미끄러지고, 몇 초간 한껏 달아오른 마음은 허탈함에 팍 식는다. 괜스레 빈 주머니 속을 더듬다가 터덜터덜 오락실을 나온다. 그렇게 오락실을 나와, 그럴듯한 목적지가 있는 듯 걸었지만 사실 정처 없었던 걸음의 발자국이 꽤나 많이 남은 지금,
어른이 된 내가 도착한 세상은 인형뽑기 기계 속.
인형뽑기 기계 안에서, 기계 앞에 서 있는 어린 나를 마주하며, 어린 내가 가진 마음을 살펴본다.
그 마음은, 마음대로 하는 마음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하얀 토끼 인형에 ‘남극에서 온 슈퍼 토끼’라는 이름을 붙이고, 개연성 없는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불어넣던 그런 마음.
어른이자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아이들의 그런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근사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그런 마음을 잊게 되는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내쳐지는 냉혹한 사회에 들어서면, 오차 없는 자수와 정교한 실루엣을 가진 말끔한 인형처럼, 스스로를 규격화된 가치에 맞춰 가기 바쁘다. 그렇기에 어른의 삶은 거대한 시스템의 굴레 속에서 무력해지고 휩쓸리기 쉽다. 하지만 사회인의 대다수는 시스템 안에 살아가야 한다. 이는 부끄러움이나 규탄의 대상이 아니며, 그저 우리 삶의 단면일 뿐이다.
어른의 삶에서 오는 무력함에 숨이 막혀오는 순간이 온다면, 잠시, 세상이 말하는 세상을 잊고, 어린왕자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듯, 마음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풍선이 되어 날아갔나 1 (Gone with the Ballon 1)
2026 · 100 x 100 cm
둥둥 떠다니는 풍선을 멍하니 보면, 풍선이 되어 날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린 날의 나는 그런 상상이 가짜라고 믿었다.
한여름의 녹음이 익숙해져 그 선명함이 조금은 덜해질 즈음 돌아보니,
나는 어릴 적의 나를 남겨두고,
거짓으로 가득한 이곳까지 날아왔구나.
풍선이 되어 날아갔나 2 (Gone with the Ballon 2)
2026 · 100 x 100 cm
둥둥 떠다니는 풍선을 멍하니 보면, 풍선이 되어 날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린 날의 나는 그런 상상이 가짜라고 믿었다.
한여름의 녹음이 익숙해져 그 선명함이 조금은 덜해질 즈음 돌아보니,
나는 어릴 적의 나를 남겨두고,
거짓으로 가득한 이곳까지 날아왔구나.
“무엇을 보존하고 계승할 것인가?”
제가 떠올린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리려 애쓰는 현재의 제 모습,
즉 '작가'로서의 저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작가로서 보존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달할 것이라는 기약 없는 믿음,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닿았을 때에도 여전히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이번 작업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갤러리라는 공간 속에서 '작가'로서의 저 자신을 보존하고 계승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작가를 꿈꾸는 동시에,
언젠가 한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꿈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에 몰두하는 시간마다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작가로서 내딛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됩니다.
우리가 외출할 때 신발을 손에 끼울지 머리에 쓸지를 고민하지 않고, 당연하게 발에 신듯이, 자명하게.
제가 꿈꾸는 작가라는 삶도 신발을 신는 일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
제 삶의 일부로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bath time
2026 · 60cm x 30cm x 54cm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상합니다.
분명 그때는 별것 아니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소중했던 순간들은 희미해지고,
사소했던 장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기도 합니다.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정말 실제의 모습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며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형태로 편집된 결과일까.
이번 작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어와 목욕 오리, 천연 해면 스펀지.
서로 다른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그것들은 어린 시절의 목욕놀이를 닮은 하나의 장면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사건을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기억은 원래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흩어진 감정과 이미지들이 시간이 지나 하나의 이야기처럼 남는 것 말입니다.
가죽은 저에게 사물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자,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형태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기억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다시 덧입히고 편집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bath time〉**은 어린 시절의 목욕놀이를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
지금의 제가 다시 만들어 낸 어린 시절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이 작품을 만들었던 오늘 또한 제게 또 하나의 '좋은 목욕놀이'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이 작업은 좌표와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화면 전체를 구성하는 반복적인 패턴은 인간이 구축한 질서와 체계를 의미한다. 그것은 수학적 사고이며,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언어이다.
그 위에 배치된 형태들은 동일한 좌표계 안에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위치와 방향을 가진다. 일부는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를 유지하고, 일부는 물질적인 흔적과 질감을 드러내며 질서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이 대비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이성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 사이의 간극을 탐구한다.
좌표는 세계를 설명하지만 삶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도 우연과 감정, 시간의 흔적은 계속해서 발생한다.
이 작업은 이후 전개되는 차원, 벡터, 시간성, 감정의 흔적에 대한 탐구의 출발점으로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그 속에서 남겨지는 흔적을 동시에 담고 있다.
생애
2026 · 90.9 x 60.6 cm
SOLD OUT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세계의 구조와 관성적인 삶을 탐구하던 작업은, 점차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공간은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와 현실을, 화면 상단의 작은 푸른 사각형은 태어날 때 누구나 품고 있던 순수한 꿈과 가능성을 의미한다. 삶이 이어질수록 그 꿈은 현실과 마주하며 상처를 입고, 끝내 하나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 작품은 그 흔적을 통해 결국 삶의 끝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생애
2026 · 72.2 x 53cm
SOLD OUT
20대의 꿈과 희망은 불확실성의 두려움으로 사라져간다.
이러한 두려움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불확실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찰흙으로 표현한다.
어둠속의 블루는 안정적이길 원하는 주변의 세상과 달리 자신의 색으로 살아가려는 모습을 의미한다.
20대를 보내며 압박속에 안정적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치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다.
Title: 쉬지 못하다.
Size: 350x200cm
Year: 2026
Mixed media on cotton
쉼을 간절히 바라지만
쉼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고,
그림의 떡처럼 느껴지는 단어 ‘쉼’.
바쁜 일상과 각진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쉼‘을 갖는 날이 올까요? 그저 뜻 없는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First Piece〉는 첫사랑을 이미 완성된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발견한 작은 조각들이 모여 비로소 형태를 갖추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젤리빈과 곰인형,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맞춰지지 않은 퍼즐, 펼쳐진 편지, 연락을 기다리는 휴대전화와 색이 번진 물은 각각 설렘과 기다림, 혼란과 깨달음의 순간을 대신한다. 작품 속 인물은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의 조각들을 하나씩 마주하며 사랑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간다.
누군가는 여름에 얼고, 누군가는 겨울에 피어나듯 사랑은 정해진 계절이나 모습 없이 각자의 시간에 찾아온다. ‘First Piece’는 사랑이 시작되는 최초의 조각인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처음으로 온전히 알아차리는 순간을 의미한다.
숨
2026 · 1min
《숨》은 고립되어 가는 한 인물의 내면을 깃털과 호흡의 변화로 표현한 영상 작품이다.
공기 중을 가볍게 떠돌던 깃털은 외면하고 밀어두었던 감정과 기억의 흔적이 되어 하나씩 몸 위에 내려앉는다. 처음에는 무게가 없는 듯 보이지만, 쌓일수록 인물의 움직임과 호흡을 짓누르고 끝내 그의 몸을 완전히 뒤덮는다.
불규칙해지는 숨과 역행하는 시간, 초점을 잃은 시선은 인물의 의식이 점차 멀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물은 깃털에 잠식될수록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고립의 끝에서 가장 고요한 상태에 도달한다.
이 작품은 가벼운 것이 무거워지고, 매몰되는 순간이 안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사라짐과 해방의 모호한 경계를 바라본다.
애별이고(愛別離苦)는 불교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그 감정을 장미꽃다발에 빗대어 표현했다. 사랑과 애정의 상징인 장미는 이별의 순간 아름다움만을 간직하지 못한 채 뒤틀리고 변형된다. 꽃잎 사이를 대신한 눈동자는 잊지 못하는 기억과 끝내 거둘 수 없는 시선을, 날카로운 이빨과 기괴한 형태는 이별이 남긴 상처와 고통을 상징한다.
화려한 꽃다발은 더 이상 축복이나 기쁨의 선물이 아닌, 사랑했던 순간과 이별의 감정을 함께 품은 존재로 변한다. 이를 통해 아름다움과 공포, 사랑과 상실이 공존하는 감정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시각화하고자 했다.
방황
2024 · 100.0 × 80.3 cm
영국에서 생활하며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느낀 고독, 불안, 자존감의 상실을 담고 있다. 자화상을 둘러싼 화려한 보석들은 완벽하고 빛나 보였던 주변 사람들의 삶을 상징하며, 그 화려함은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소외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밝고 아름다운 외면 속에 내면의 우울과 혼란을 감추는 아이러니를 통해,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과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했던 경험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 + - = +
NKii · Hxoshin (공동 작업)
2026 · 181.8 x 181.8 cm
작품 ‘-+-=+’는 너와 나의 부족함이 서로를 만났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의미를 담아, 수학적·정신의학적 관습을 예술적 역설로 풀어낸 김효신(Hxoshin) , 김가영(Nkii) 작가의 공동 회화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두 부정이 만나면 더 깊은 부정이 된다는 통념과 달리, 학창 시절부터 서로의 정신적 불안정함을 지지하며 오히려 긍정적인 삶의 동력을 얻었던 두 작가의 실제 경험은 ‘마이너스(-)’가 만나 ‘플러스(+)’가 되는 특별한 관계의 힘을 증명한다. 이러한 서사를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들은 캔버스 안에서 공간을 나누지 않는 기법을 차용하였으며, 먼저 각자의 깊은 우울을 형상화한 뒤 그 위에 서로가 발견한 상대방의 긍정적인 면들을 낙서하듯 자유롭게 채워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듯 상처의 층위 위에 덧씌워진 애정 어린 기록들은 개인이 지닌 아픔이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통해 어떻게 치유와 희망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탑은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며 쌓아 온 인생을 상징합니다.
각 블록은 삶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경험과 성장을 의미합니다.
중국의 호구탑을 보며 ‘탑’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천천히 공들여서 탑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 제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저는 제 삶을 통해 쌓여 온 중요한 것 들을 바탕으로 이 탑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탑에서 자라고 있는 풀은 지금도 조용히 자라나고 있고,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갈 저의 미래를 상징합니다.
큰 사람 (The wise tree)
2026 · 230 × 230 × 245 cm
나무는 나에게 어린 시절부터 위로를 줬다.
나무는 존재의 압도감 만으로도 위로를 주지만
꽃잎과 나뭇잎, 열매로도 위로를 선사한다.
하지만 나무는 가끔 가지가 절단된다.
그런 나무를 지키고자 철로 감쌌다.
Charlie
2026 · 162 × 130 cm (100호)
나는 오랜 시간 방황했다.
방황의 시간 속 침대라는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침대에 처박혀 있는 Charlie가 눈에 들어왔다.
불쌍해서 일으켜줬다. 그 순간 깨달음이 있었다.
그 침대라는 방황에서 뒤를 돌기만 하면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그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배경에 있는 구 형태의 부분은 방황했던 침대이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의 시선(눈)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침대에서 Charlie를 바라봤을 때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그저 빨래더미들 , 하지만 Rion에겐 정글 숲처럼 느껴진다.
보물을 찾아라 - !
다 큰 어른들에겐 빨랫줄에 걸린 빨래는 그저 빨래일 뿐이다. 누군가는 저걸 또 언제 치우지 하며 한숨을 쉴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빨래로 여기지 않았다. 정글숲인 것만 같았고 어린아이의 시각인 Rion에 이입하여 표현했다. 별거 아닌 빨래들에 스토리를 부여하여 빛나는 보물들을 찾아나서는 Rion이다.
Rion's Cucine
2026 · 25S(square)
그저 요리 소꿉놀이가 아니다, 풀과 돌만 있다면 그곳이 레스토랑이다.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랍시며 풀, 꽃, 그리고 흙 등 여러 재료를 모아서 자르고 빻고 섞고 요리를 하던 기억이 떠올았다. 그 순간 몰입을 하면 고급 레스토랑과 다를게 없다. 쉐프와 쉐프일 뿐이다.
레스토랑의 주방과 돌로 풀을 써는 Rion을 중심으로
바닥에 덩쿨과 모래들을 통해 놀이터라는 것을 알려준다.
Rion con Bear
2026 · 30S(square)
Rion 과 곰인형
Rion과 곰돌이가 관람객을 향해 보고있다. 같이 놀기라도 하자는 것처럼. 요즘 어린이들끼리도
같이 놀러 나가자 이 한마디 조차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관객에게 자신도 어린 아이로 돌아가
자신과 함께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보여줌으로써
동심을 느끼게 한다.
기존의 만다라가 정제되고 기하학적인 원을 중심으로 그려졌다면,
제가 표현하는 현대의 만다라는 둥그런 최소한의 형태만 유지한 채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구조입니다.
이는 절대적인 가치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폭발적으로 변화하는 동시대의 특성이 드러나는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무의식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거친 신화적 이미지들을 이 얽힌 구조 속에 담았습니다.
이 그림의 많은 부분 또한 동남아의 신화적 이미지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보여지는 것은 동시대의 수많은 이미지들이 무의식 속에 얽혀 만들어낸 시대의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난 아직 어리고 / Even so, I’m still immature
2026 · 60 x 40cm
20살 어린 나이지만 동시에 젊음을 말할수있는 나이. 몸이 커져도 난 막내이자 아들이며 고작 5일 출근 하나도 힘겨워, 버거워하는 난 아직 어린가 봅니다.
바빌론의 탑 / tower of Babel
2025 · 228 x 90cm
이 그림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살피기 전에 무엇이 자신에 눈에 먼저 들어왔는지, 그리고 그 작은 부분이 왜 자신의 기억의 한자리를 잡게 되었는지가 중요 할것 같습니다.
비본래적 인간
2025 · 230 x 110cm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집단 안에 있을 때 우뚝선 개인을 불편하게 느끼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좀더 개인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황량몽
2025 · 110 x 79cm
SOLD OUT — 경매 낙찰
이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꿈속에서 본 풍경을 일어나자마자 스케치한 뒤, 그것을 종이 위에 옮긴 것입니다. 무의식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라서 이렇다 할 언어적 설명은 부족하지만, 해골로부터 독립하게 된 저에게는 특별한 작품입니다.
제 작품 속 인물의 얼굴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원과 삼각형 같은 단순한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마다 인물의 피부색은 모두 다르게 표현됩니다. 이는 '사람은 서로 닮아 있지만 결코 같은 존재는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저마다의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존재라는 믿음을 담기 위해, 모든 작품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1/1 에디션으로 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선택 속에서 살아갑니다. 좋아하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순간부터 진로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나다운 기준'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보편적인 기준이나 유행이 먼저 앞서는 모습을 자주 마주했습니다.
저는 그런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기보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 안에 존재하는 특별함을 먼저 바라보고, 더 나아가 그 특별함이 결국 자기 자신 안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이 쌓일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조금씩 따뜻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 그림에는 동화책의 한 장면 같은 따뜻한 색감과 평범한 일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친구와 함께한 기억, 접점이 없는 동생들과 늦은 시간까지 만든 추억, 새벽의 서늘하고 신선한 풍경처럼 사소하지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상상과 감정으로 다시 그려냅니다. 제게 동심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감성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에서도 행복과 감사, 그리고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작품은 이러한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자는 작은 제안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오래 고민하는 것은 색입니다. 인물과 색에 대한 익숙한 공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매 작품 새로운 색의 관계를 탐색합니다. 하나의 아름다움이 정답처럼 굳어지는 순간 또 다른 고정관념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획일적인 아름다움보다 서로 다른 색과 개성이 공존하는 장면을 그리고 싶습니다.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저는 누군가의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는 마음으로 작업합니다. 작품 속 인물은 특정한 누군가이면서도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저는 기억과 감정, 개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은 제가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작업의 출발점입니다.
구름 바람
2026 · 39.4 x 27.2 cm
초등학교 4학년, 학원 계단에서 먼저 제 이름을 물어봐 준 친구와는 어느덧 15년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람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친구는 제가 수없이 부딪히는 뾰족한 세상 속에서 잠시 머물 수 있는 폭신한 구름입니다.
바람은 구름에게 쉼을 얻고, 구름은 바람을 따라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을 '구름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담았습니다.
이 작품은 특별한 순간보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오래된 우정은 서로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여름 새벽
2026 · 39.4 x 27.2 cm
SOLD OUT
아무도 새벽을 기다리고 싶진 않습니다.
모두가 아침을 기다릴 뿐입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무대를 다시 돌려 보고,
영감을 준 영화를 몇 번이고 되새기고,
자신만의 술을 빚으며
이른 새벽의 고요 속에서 하루의 시작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가장 단단하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빛은 언제나 이른 새벽을 지나온 사람의 것입니다.
쉼
2026 · 39.4 x 27.2 cm
SOLD OUT — 경매 낙찰
우리는 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요.
흥미롭게도 쉼이라는 한 글자 안에는 숨, 산, 집, 창문처럼
휴식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이미지와 소리가 겹쳐 있습니다.
글자처럼 저는 그림 곳곳에는 제가 생각하는 휴식의 조각들을 숨겨 두었습니다.
사람마다 쉬는 방법은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일 수도 있고,
창밖을 바라보는 몇 분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이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휴식을 다시 떠올리고,
바쁜 하루 속에서도 스스로를 돌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쉼은, 저 역시 지금도 꾸준히 배워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가장 조용한 용기입니다.
해
2026 · 72.2 x 53.0 cm
SOLD OUT — 경매 낙찰
해는 밤에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다시 떠오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경쟁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는 있지만, 결국 다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인물은 지쳐 있습니다.
경쟁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쉽게 소진시키기도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햇빛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경쟁은 필요한 과정이긴 합니다.
하지만 햇빛만 계속 쬐고 있으면 피부가 타고 메마릅니다.
그래서 내가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그늘의 영역이 필요합니다.
빛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쉼은 그 빛을 오래 품을 수 있게 한다고 믿습니다.
저녁 노을
2026 · 39.4 x 27.2 cm
SOLD OUT — 경매 낙찰
자동차는 표지판 앞에서 멈춥니다. 멈춰야 하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잠시 신발끈을 묶기 위해 멈추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앞서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신발끈을 묶지 못한 채 다시 달리곤 합니다.
그리고 결국, 작은 걸림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도 '잠시 멈춰도 괜찮은 표지판'이
필요하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루를 바쁘게 살아낸 끝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있기에,
우리는 비로소 저녁 노을을 발견하게 됩니다.
멈춤은 뒤처짐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덫
2026 · 39.4 x 27.2 cm
연예인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존재일까요?
보는 사람에게는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의 덫이지만,
보이는 사람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시선의 덫에 옭아매진 존재입니다.
이 작품은 이처럼 한 존재를 둘러싼 상반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연예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를 부러워하고 동경하기에 시기하고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동시에 누구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덫이 되고, 또 누군가의 덫에 갇혀 살아갑니다.
쉬는 시간
2026 · 39.4 x 27.2 cm
저에게 어린 시절의 공중전화 박스는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려고 굳이 나가 기꺼이 걸음을 재촉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통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언제든 연결되는 스마트폰이 손안에 있지만,
오히려 한 번의 망설임이 더해진 채 더디게 마음을 건네게 되곤 합니다.
이 작품은 스마트폰으로 공중전화 박스를 그려,
가장 현대적인 도구 안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기억을 담았습니다.
더 빠르게 연결되는 시대 덕분에 쉬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인데,
정작 마음을 전하는 일은 전보다 느려진 것은 아닌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마음을 전하는 용기는 오히려 멀어졌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아날로그에 대한 추억과,
주저함 없이 마음을 표현하던 동심을 동경하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감정들을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있다.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한 맹수의 눈으로 상대를 품에 가둔 인물과 힘없이 몸을 맡긴 듯 안겨 초식동물의 눈을 하고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를 하는 듯한 두 인물. 무력으로 제압한 상대의 마음마저 내가 가질 수 있을 거란 착각으로 갇힌 쪽은 나였음을 같은 얼굴을 한 두 인물로 빚어냈다.
시선
2026 · 80.3x116.8
카피캣. 자라는 새끼 고양이가 어미의 모습들을 관찰하여 흉내를 내거나 친밀감이 높은 성묘들의 행동 동기화, 놀이 모방을 이처럼 부른다. 이는 인간 관계 속에서도 적용이 되는데 유대감이 높은 상대와 가까운 거리에서 닮아가는 모습은 고양이의 습성과도 닮아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그림에서 살펴볼 부분은 서로의 시선과 몸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닿아 서로를 지탱해주는 자세는 얼핏 높은 유대감이 쌓인 관계로 보이지만 자신의 몸으로 기꺼이 받쳐주는 이가 사라진다면 무너질 치우쳐진 관계를 보여준다. 고양이의 형상을 띈 두 인물이 어떠한 모방 없이 한쪽에게 걸쳐진 모습은 이 관계 속에서는 더 이상 유대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암시를 보내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형태를 잃고 감각으로 남는다. 달콤했던 순간, 흩어지는 공기, 익숙한 향기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여전히 현재의 나를 스친다.
찰나의 기억들은 선명함 대신 희미하게 남아 과거 나의 일부분을 드러낸다. 당연하게 믿었던 환경이나 관계 그리고 특정한 경험들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가 되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세계를 벗어나기도 하고 스스로 깨뜨리기도 했지만 결국 그 세계들이 나를 만들어 왔다. 그것들은 내가 무엇을 믿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보여주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 찰나의 감정들과 지나온 세계의 흔적들이 마치 달콤한 연기나 향기처럼 지금의 나를 다시 스쳐 지나간다.
With the passage of time, childhood memories lose their tangible forms and remain merely as sensations. Indescribable emotions—like sweet moments, scattering air, or a familiar scent—still brush past the present me.
These fleeting memories, remaining faint rather than distinct, reveal a part of who I used to be. The environments, relationships, and specific experiences I once believed in without question each formed a world that surrounded me.
As time flowed, I stepped out of those worlds or broke through them myself, yet in the end, those very worlds built who I am today. They remain as traces, showing what I once believed in and the journeys I have passed through.
Indescribable, fleeting emotions and the traces of worlds I have passed through brush past the present me once again, like sweet smoke or a gentle scent.
THE egg IS THE WORLD
2026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헤르만 헤세의 문장에서 시작된 작업은 깨치고 날아간 새보다 그 자리에 남아버린 '껍질'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나에게 그 껍질은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첫 번째 세계 바로 동심의 흔적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선명하고 무해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알록달록한 색채, 작은 핀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했던 기쁨, 비밀스러운 상상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자라나고 당연하다는 듯 그 울타리를 깨트리며 밖으로 흘러나온다.
세상은 이를 ‘성장’이라 부르며 지나온 것들을 뒤로하라고 말하지만 벗어던진 동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허물’이 되어, 현재의 우리 몸과 마음 한구석에 가만히 겹쳐진 채 남아 있다.
귀엽고도 기묘하게 남아있는 이 여러 겹의 허물들은 내가 한때 어떤 미학을 사랑했고 어떤 무구함 속에서 숨 쉬었는지를 증명하는 초상이다.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The egg is the world." Starting from Hermann Hesse’s words, my gaze lingered not on the bird that broke free and flew away, but on the shell left behind in its place. To me, that shell represents the trace of childhood—the very first world we had to pass through to become adults.
In our childhood, we lived within a vivid and harmless world. Bright, vibrant colors, the joy of feeling like we possessed the entire world with just a tiny hairpin, and secretive imaginations formed a sanctuary around us.
Yet as time passed and we grew, we naturally broke through that boundary and flowed outward into the world beyond.
Society calls this 'growth' and urges us to leave what was behind, but I believe that discarded childhood never truly disappears. It becomes an inseparable 'skin'—a delicate layer that quietly remains overlapped within a corner of our present mind and body.
These multiple layers of skin, lingering in a way both cute and grotesque, serve as a portrait proving what kind of aesthetic I once cherished and what innocence I breathed within.
connected (us in another universe)
2026 · 273x 273 / 220 x 220(mm)
머리카락 입체 작업에서 엉겨 붙어 있던 유기적인 형태들은 평면 화면 위로 옮겨와 새로운 우주를 형성한다.
어린 시절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상상을 펼치듯 3차원 속 머리카락의 결들은 붓끝을 거치며 아득하고 신비로운 성운이자 상상 속 미생물의 형태로 재탄생되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눈을 감고 또 다른 차원에서 친구나 상상 속 존재와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화면 속에 뻗어 나가는 알록달록하고 몽환적인 형태들은 바로 그 시절 우리가 가졌던 순수한 연결감 즉 ’또 다른 우주에서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는 동심의 다정한 환상을 시각화한 것이다.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는 몽환적인 파스텔톤의 형태들은 묘한 기괴함과 동시에 몽글몽글한 동심의 상상력을 품고 있다. 끊어질 듯 연결되는 유기적인 선들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 또 다른 평행 우주(another universe)에서 여전히 손을 잡고 있을 ‘너와 나’,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잇는 비밀스러운 통로가 된다.
이 연작은 버려진 허물과 흔적들이 어른이 된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여전히 유기적으로 살아 숨 쉬며 또 다른 꿈의 우주로 확장되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The organic forms that entangled one another in the three-dimensional hair sculptures move onto the flat canvas to form a new universe.
Just as we once gazed up at the night sky in childhood, weaving delightful imaginations, the strands of hair in three-dimensional space pass through the tip of a brush to be reborn as distant, mysterious nebulae and imaginary microorganisms.
In our childhood, we believed that even when far apart, we could simply close our eyes whenever we wanted to meet a friend or an imaginary creature in another dimension. The colorful, dreamlike forms stretching across the canvas visualize that pure sense of connection we once possessed—a tender childhood fantasy that "in another universe, we are always connected."
The dreamlike pastel forms, contrasting with the dark background, embrace both a subtle sense of the grotesque and the soft, glowing imagination of childhood. These organic lines, stretching as if about to snap yet holding on, cross the boundaries of reality to become secret passages connecting "you and I," as well as "my younger self and my present self," still holding hands in another universe.
This series illustrates how discarded skins and traces continue to breathe organically within our adult subconscious, expanding outward into another universe of dreams.
《Goon》은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기억과 순수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화면 속 배경은 스폰지밥에 등장하는 해변 'Goo Lagoon'을 차용했지만, 작품은 만화 자체를 재현하기보다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상적인 기억의 장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제목인 'Goon'은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 특정 대상에 깊이 몰입한 상태를 의미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미성숙하거나 어리석다고 여겨지는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단어를 반복해 사용하며, 어린 시절의 순수한 몰입과 상상력이 성장 이후에는 종종 비생산적이거나 유치한 것으로 치부되는 사회적 시선을 드러낸다.
가상의 장소를 함께 바라보는 두 노인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감정을 상징한다. 현실과 허구, 유머와 향수가 공존하는 이 풍경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에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내면의 공간임을 이야기한다.
《Goon》은 사회가 '철없음'이라 부르는 몰입과 상상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자유롭게 만드는 감각일 수 있다는 질문을 던진다.
BRED
2026 · 72.7 × 50.0 cm
BRED는 본능과 사회적 정체성 사이의 긴장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화면을 감싸는 인조 퍼는 평면 회화를 하나의 오브제로 확장시키며, 부드러움과 야생성, 보호와 소비의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화면 속 동물은 거친 금색 제스처에 의해 일부 가려져 있다. 이 금색 흔적은 단순한 붓질이 아니라, 개인 위에 덧씌워지는 이름, 브랜드, 사회적 기준을 상징한다. 본래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끊임없이 외부의 시선과 가치에 의해 덮이고 재해석된다.
작품은 우리가 타고난 존재인지, 혹은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인지를 질문한다. BRED는 본능적인 생명성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점을 통해,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길들여짐'의 의미를 탐구한다.
‘장난감 도시’라는 시리즈는 2014년에 시작되어 일반적으로 도시 인프라의 물리적 측면과 도시 생활과 자연의 건축 요소에 대한 시각적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동물, 식물, 나무와 같은 살아있는 요소와 자동차, 기차, 비행기와 같은 움직이는 요소는 모두 장난감 도시의 ‘거주자’를 나타낸다. ‘장난감 도시’ 시리즈는 과거의 추억과 개인적, 역사적 영향을 받은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이 시리즈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 나에게 사물과 기억은 도시의 한 부분, 우리가 종종 무시하고 가끔 잊어버리는 부분으로 재현될 수 있었다. 나는 관람객에게 “마치 장난감을 조립하듯,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 속 공간을 조립하면서, 화면 속 도시가 각자에게 색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장난감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What is Private
2020 (A Toy City Series) · 50×42cm
‘장난감 도시’라는 시리즈는 2014년에 시작되어 일반적으로 도시 인프라의 물리적 측면과 도시 생활과 자연의 건축 요소에 대한 시각적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동물, 식물, 나무와 같은 살아있는 요소와 자동차, 기차, 비행기와 같은 움직이는 요소는 모두 장난감 도시의 ‘거주자’를 나타낸다. ‘장난감 도시’ 시리즈는 과거의 추억과 개인적, 역사적 영향을 받은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이 시리즈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 나에게 사물과 기억은 도시의 한 부분, 우리가 종종 무시하고 가끔 잊어버리는 부분으로 재현될 수 있었다. 나는 관람객에게 “마치 장난감을 조립하듯,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 속 공간을 조립하면서, 화면 속 도시가 각자에게 색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장난감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Tropical Parking Garage
2018-2019 (A Toy City Series) · 29×24cm
‘장난감 도시’라는 시리즈는 2014년에 시작되어 일반적으로 도시 인프라의 물리적 측면과 도시 생활과 자연의 건축 요소에 대한 시각적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동물, 식물, 나무와 같은 살아있는 요소와 자동차, 기차, 비행기와 같은 움직이는 요소는 모두 장난감 도시의 ‘거주자’를 나타낸다. ‘장난감 도시’ 시리즈는 과거의 추억과 개인적, 역사적 영향을 받은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이 시리즈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 나에게 사물과 기억은 도시의 한 부분, 우리가 종종 무시하고 가끔 잊어버리는 부분으로 재현될 수 있었다. 나는 관람객에게 “마치 장난감을 조립하듯,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 속 공간을 조립하면서, 화면 속 도시가 각자에게 색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장난감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그렇다. 오래 지나면 온전한 장면으로 남지 않는다. 파편처럼 떠다니고, 붙잡으려 할수록 더 흐려진다. 나는 그 흐릿함이 오히려 무언가를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채워지는 것들, 기억이 닿지 않는 자리를 상상이 메우는 것. 어린 시절은 그렇게 신화가 된다.
이 작업은 그 신화에 나의 세계관을 접목한다. 놀이터, 문방구, 방. 그 시절의 공간들은 이미 또렷하지 않다. 화면 속 인물은 그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속하지 못한 채 무심하게 서있다. 그 무심함은 그때도 지금도 같다.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믿고 싶지만, 파편으로만 남은 기억 속에서 그 믿음은 자꾸 흔들린다. 동심이 깨진 순간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되어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감정뿐이다.
그때도 불안했고,
그때도 외로웠고,
그때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Mythe of Childhood 2
2026 · 420 x 594mm (A2 사이즈)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그렇다. 오래 지나면 온전한 장면으로 남지 않는다. 파편처럼 떠다니고, 붙잡으려 할수록 더 흐려진다. 나는 그 흐릿함이 오히려 무언가를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채워지는 것들, 기억이 닿지 않는 자리를 상상이 메우는 것. 어린 시절은 그렇게 신화가 된다.
이 작업은 그 신화에 나의 세계관을 접목한다. 놀이터, 문방구, 방. 그 시절의 공간들은 이미 또렷하지 않다. 화면 속 인물은 그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속하지 못한 채 무심하게 서있다. 그 무심함은 그때도 지금도 같다.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믿고 싶지만, 파편으로만 남은 기억 속에서 그 믿음은 자꾸 흔들린다. 동심이 깨진 순간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되어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감정뿐이다.
그때도 불안했고,
그때도 외로웠고,
그때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Mythe of Childhood 3
2026 · 420 x 594mm (A2 사이즈)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그렇다. 오래 지나면 온전한 장면으로 남지 않는다. 파편처럼 떠다니고, 붙잡으려 할수록 더 흐려진다. 나는 그 흐릿함이 오히려 무언가를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채워지는 것들, 기억이 닿지 않는 자리를 상상이 메우는 것. 어린 시절은 그렇게 신화가 된다.
이 작업은 그 신화에 나의 세계관을 접목한다. 놀이터, 문방구, 방. 그 시절의 공간들은 이미 또렷하지 않다. 화면 속 인물은 그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속하지 못한 채 무심하게 서있다. 그 무심함은 그때도 지금도 같다.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믿고 싶지만, 파편으로만 남은 기억 속에서 그 믿음은 자꾸 흔들린다. 동심이 깨진 순간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되어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감정뿐이다.
그때도 불안했고,
그때도 외로웠고,
그때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는 행복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자연스럽게 상상한다. 이 작품은 그런 순수한 믿음과 희망의 순간을 다채로운 색채로 담아낸다. 화면 위로 자유롭게 번지고 흩어지는 색들은 끝없이 꿈꾸던 어린 마음의 가능성을 상징하며, 인물은 그 행복의 조각들을 소중히 품고 있다. Eternal Happiness는 현실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간직했던 영원한 행복에 대한 동심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Eternal Happiness
어린 시절 우리는 행복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자연스럽게 상상한다. 이 작품은 그런 순수한 믿음과 희망의 순간을 다채로운 색채로 담아낸다. 화면 위로 자유롭게 번지고 흩어지는 색들은 끝없이 꿈꾸던 어린 마음의 가능성을 상징하며, 인물은 그 행복의 조각들을 소중히 품고 있다. Eternal Happiness는 현실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간직했던 영원한 행복에 대한 동심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Narcissist
150호 (추정)
SOLD OUT
어린 시절 우리는 행복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자연스럽게 상상한다. 이 작품은 그런 순수한 믿음과 희망의 순간을 다채로운 색채로 담아낸다. 화면 위로 자유롭게 번지고 흩어지는 색들은 끝없이 꿈꾸던 어린 마음의 가능성을 상징하며, 인물은 그 행복의 조각들을 소중히 품고 있다. Eternal Happiness는 현실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간직했던 영원한 행복에 대한 동심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어릴 때 검도를 다니며 발에 생긴 굳은 살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재미 있게 배웠던 기억이 있어 성인이 되어 다시 배워보려 했을 때 만만치 않은 가격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다녔던 검도라는 추억의 뒷면엔 엄마, 아빠의 노고와 헌신이 깃들어 있었단 깨달음을 작품에 담아 보려 했습니다.
위축자폐(萎縮自閉)
2025 · 1780 * 340 * 460 mm
나에게 옷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닥쳐올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감추는 껍질입니다.
본 작업은 현시대를 살아가며 느끼는 불안감이 자아낸 나를 감싸는 고치입니다.
감정은 언제나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침식된다. 흘러내리는 물감은 감정이 스며드는 시간을, 검게 응집된 형태는 말로 표현되지 못한 무력감을 나타낸다. 형태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흔적은 분명히 남아 존재를 잠식한다. 이 작품은 무너짐의 순간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인간에게 남기는 감정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잔존 회로 (Residual Circuit)
2026 · 124 x 78 cm
**〈잔존 회로 (Residual Circuit)〉**는 기능을 상실한 TV를 해체하여 내부의 기판과 전자 부품을 드러내고, 다양한 굵기의 실을 교차시키며 새로운 연결 구조를 형성한 작업이다. 실은 전류를 전달하는 배선을 대체하는 조형 요소이자 인간의 신경망, 관계, 기억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작동을 멈춘 기계는 더 이상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지만, 그 내부에는 수많은 연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품은 해체된 회로 위에 새로운 연결을 구축함으로써 기능 중심의 가치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관계와 기억의 지속성을 탐구한다.
**〈잔존 회로〉**는 단절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연결의 흔적을 시각화하며, 기술과 인간 모두 수많은 관계와 구조 위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기능은 끝났지만 연결은 남아 있다는 역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통과 존재의 의미를 질문한다.
Remnants
2026 · 120 × 90 cm (variable)
인간의 신체는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경험이 축적된 흔적이다. 본 작업은 입, 폐, 척추, 발이라는 신체의 일부를 분리하여 제시함으로써 하나의 인간을 해체하고 다시 바라본다. 각각의 신체는 감정의 표현, 생명의 유지, 몸을 지탱하는 구조, 삶의 흔적을 상징하며, 분리된 파편들은 하나의 자아를 구성하는 단서가 된다. 관람자는 이 조각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취약성과 보이지 않는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본 작품은 입, 폐, 척추, 발을 모티프로 한 4점의 연작으로 구성된다.
작품 ‘-+-=+’는 너와 나의 부족함이 서로를 만났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의미를 담아, 수학적·정신의학적 관습을 예술적 역설로 풀어낸 김효신(Hxoshin) , 김가영(Nkii) 작가의 공동 회화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두 부정이 만나면 더 깊은 부정이 된다는 통념과 달리, 학창 시절부터 서로의 정신적 불안정함을 지지하며 오히려 긍정적인 삶의 동력을 얻었던 두 작가의 실제 경험은 ‘마이너스(-)’가 만나 ‘플러스(+)’가 되는 특별한 관계의 힘을 증명한다. 이러한 서사를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들은 캔버스 안에서 공간을 나누지 않는 기법을 차용하였으며, 먼저 각자의 깊은 우울을 형상화한 뒤 그 위에 서로가 발견한 상대방의 긍정적인 면들을 낙서하듯 자유롭게 채워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듯 상처의 층위 위에 덧씌워진 애정 어린 기록들은 개인이 지닌 아픔이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통해 어떻게 치유와 희망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Void
2026 · 162.1 x 112.1 cm
SOLD OUT — 경매 낙찰
작품 ‘ Void’ 는 작가 김효신( Hxoshin) 이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다가 집에 도착하여 방에 왔을때 느끼는 거대한 공허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보통 공허하다 하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지만 작가 본인은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억압하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해 공허라는 존재가 나를 거대한 입속에 가둔듯이 표현하였다
해먹 위에서 온몸을 맡긴 채 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온기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먹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교직된 사물 자체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비정형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물성은 규정할 수 없는 동심의 에너지를 시각화하며, 여전히 그 공간에 머물며 살아 숨 쉬는 순수한 동심의 가치를 은유합니다.
滯留 (체류)
2024 · 500*400 h800
사물과 공간은 지나간 시제의 온기를 품은 채 그 자리에 정지해 있습니다. 계획된 경계를 넘어선 유기적이고 우연적인 조형미는, 메마른 사물의 틈새마다 소멸하지 않고 깊숙히 체류하는 순수한 동심의 흔적을 발현하며, 망각했던 내면의 감각을 직면하게 합니다.
本質 (본질)
2026 · 60*45
어른이 되어서도 내재하는 동심의 또 다른 파사드(Facade). 우리가 일상의 사물이나 낯익은 공간, 혹은 추억이 깃든 누군가를 마주하는 순간 문득 아이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순수함이 이미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본질로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본디 품고 살아가는 영원한 안식처임을 증거합니다.
어린 시절이란 무엇인가,
가장 깨끗하고 맑으며 거짓없이 투명한 것.
따스한 빛에 안겨 인도받는 시기.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다른 고민 없이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시기,
인연이란 이름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꿰어 나가는 시기.
What is childhood?
The purest, clearest, and most transparent stage of life, untouched by falsehood.
A time embraced and guided by warm light.
A time when we feel one another's warmth and fall asleep in peace, free from every other worry.
A time when, through the bonds we form, we begin to weave a story that is uniquely our own.
Dreaming:Stillness
2026 · 33.4×53.0cm
가장 강인하고도 동적인 생명체의
가장 나약하고도 정적인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를 이루는 순간과 평화.
The frailest and quietest moment of the strongest and most dynamic of living beings.
A moment when everything seems to stand still.
A moment of stillness and peace.
Dreaming:Embrace
2026 · 50cm
SOLD OUT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보듬어줄 수 있는 상태.
따뜻하게 포옹하며 의지하고, 보호하며,
신뢰하는 관계.
사실은 나조차도 빛에 안겨 기대고 있지만,
고민 없이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는.
둘도 없는 안식이자 사랑.
The frailest and quietest moment of the strongest and most dynamic of living beings.
A moment when everything seems to stand still.
A moment of stillness and peace.
어렸을 때는 이상한 색을 고르는 데 이유가 없었습니다.
호수는 꼭 파랄 필요가 없었고, 나무가 보라색이어도 틀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색은 그저 상상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정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풀은 초록색으로.
틀리지 않는 색을 고르고,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때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이 호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색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한때 자유롭게 상상했던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그 가장자리에는 시간이 흘러도 조용히 살아남는 이끼가 자라나고, 그 안에서는 굳어버린 손들이 물 위를 향해 뻗어 있습니다.
그 손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끝내 붙잡지 못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이미 석고처럼 굳어버린 시간은 다시 움직이지 않습니다.
물 위로 겨우 얼굴의 절반만 드러낸 인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마음 한편에는 어린아이가 숨 쉬고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이미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으로 굳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조형들은 모두 흰색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색을 잃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정말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세상이 정한 색이 아닌 자신만의 색을 고르고 싶은 아이가 조용히 손을 뻗고 있는 걸까요.
Rest in Kid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아직 잠들어 있는 그 아이가, 정말 사라진 것인지 묻는 작품입니다.
어쩌면 죽은 것은 어린 시절이 아니라, 상상하는 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Stuck in time
2026
우리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몸속 깊이 묻어둔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드레스는 어린 시절을 향한 욕망을 레드 와인 벨루어로 감싼다. 와인 컬러는 단순한 화려함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지는 갈망과 결핍을 담고 있다.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없이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천의 깊은 광택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드레스의 등을 가로지르는 스모킹은 척추를 닮아 있다. 우리의 몸을 지탱하는 척추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서 지금의 나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잡아당겨 만들어진 주름은 성장의 과정에서 접히고 압축된 기억을 의미한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원래의 형태로 펼쳐질 수 없다.
몸을 감싸는 석고 손들은 그 시간을 붙잡으려는 욕망이다. 손은 끊임없이 다가가지만 이미 굳어버린 채 움직이지 못한다. 발아래 놓인 풍선들은 한때 가볍게 떠오르던 동심을 상징하지만, 단단히 굳어버려 더 이상 하늘을 향하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등에 짊어진 우리 각자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속 슈퍼히어로나 멋있던 어른들을 동경했습니다. 동경은 아이가 대상의 일부분만을 보고 따라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동경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기에 결국 현실의 벽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또 다른 아이의 동경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순환은 누구나 누군가의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누군가를 동경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Shounen!〉(Shōnen)에서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아바타(누군가)를 표현하며, 마치 나를 따라 하듯 트래킹하는 움직임을 통해 작품을 보는 관객이 아바타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동경이 순환하는 관계를 표현했습니다.
TIT for TAT
2026 · 1792 x 4032 (px)
저는 어릴 때부터 온라인 채팅을 통해 세상을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채팅 속 모든 말을 믿곤 합니다. 누군가의 말에 답장하고 질문하는 이러한 단순한 반응의 반복은 동심으로 가득했던 성장 과정 속에서 우리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형성합니다. 결국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대응은 자신에게도 변화를 주고, 상대방에게도 변화를 줍니다.
〈TIT FOR TAT〉은 이러한 대응과 변화 속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자아를, 제가 써왔던 채팅 데이터의 집합을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표현한 영상입니다.
AN ORANGE // 2025
He sinks his teeth into the juicy fruit —
and the sticky orange juice runs down his hand.
Her body is wounded;
it remembers cruel touches,
absorbing them ,
and leaves scars on her delicate flesh —
marks she will never be able to erase.
이 작업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 온 비만과 신체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비만은 단순한 신체적 상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평가,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자기검열을 통해 형성된 정체성의 일부였다. 작가는 자신의 몸이 사회적 기준 안에서 어떻게 관찰되고 판단되었는지를 되돌아보고, 이러한 경험을 사람이 몸을 맡기고 휴식하는 의자의 형태로 번역하였다.
작품의 부풀고 겹쳐진 형태는 신체에 축적된 지방의 물리적인 이미지와 함께, 몸에 쌓여 온 감정과 기억의 무게를 나타낸다. 의자는 일반적으로 신체를 지지하고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사물이지만, 이 작품은 앉는 사람의 몸을 감싸는 동시에 움직임을 제한하고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작품에 앉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에서 편안함과 불편함, 보호받는 감각과 억압받는 감각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 작업은 휴식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휴식을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생각하지만, 작가는 과도한 편안함이 때로는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나태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바라본다. 따라서 작품은 ‘휴식은 반드시 편안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불편함과 긴장 역시 새로운 행동과 변화를 유도하는 휴식의 방식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결국 이 작품은 비만한 몸을 교정하거나 감추어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몸이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 그 안에 축적된 경험을 하나의 조형적 언어로 드러내며, 신체와 휴식, 편안함과 나태함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체성 (Identity)
2025 · 50 x 55 x 165 cm
이 작품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나라와 문화권을 옮겨 다니며 살아온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익숙해졌지만, 어느 한곳에도 완전히 속해 있다는 감각을 갖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작가의 정체성을 하나의 분명한 모습보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얻은 기억과 감정이 쌓여 만들어진 상태로 바라보았다.
작품의 형태는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상자 속 양과 보아뱀의 실루엣, 그리고 불규칙하게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영감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형상만으로는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보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이는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배경과 내면을 모두 알 수 없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작품은 재활용 쓰레기를 쌓은 뒤 광목천과 검은 천으로 감싸 제작했다. 조명을 켜면 광목천을 통해 내부의 실루엣만 드러나며, 멀리서 보았을 때는 하나의 조명이나 인체 같은 형태로 보인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정돈되지 않은 재활용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이러한 외부와 내부의 차이는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과 실제로 개인 안에 축적된 경험 사이의 간격을 표현한다. 겉에서는 하나의 형태로 정리되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문화와 기억, 소속되지 못했던 경험이 뒤섞여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불완전한 축적 역시 작가의 정체성을 이루는 일부임을 보여준다.
순수라는 틀 (Framed Pureness)
2026 · 30 x 30cm
요즘 작가는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Unframed Pureness를 마주하며, 오히려 순수함이야말로 우리를 규정하는 하나의 틀일 수 있다는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사회는 순수함, 착함, 순진함을 아름다운 가치로 이야기하지만, 그러한 기준은 때로 개인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머무르게 만든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틀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경험과 상처, 실패와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잘 제련되고, 잘 마모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깨뜨리며 성장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
작품은 이러한 생각을 곰돌이 형태의 외피와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의 형상으로 표현한다. 곰돌이는 유년기의 순수함과 사회가 기대하는 순진한 이미지를 상징하며, 꽃은 그 껍질을 깨고 나온 이후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는 순수함을 부정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순수라는 틀을 넘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완숙해지는 과정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두 마리의 말은 서로 다른 세계를 상징합니다.
하나는 낮과 빛, 따뜻함을,
다른 하나는 밤과 고요, 차가움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서로를 밀어내지 않네요.
그 사이에 놓인 해바라기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두 존재를 이어주는 ‘영혼의 접점’입니다.
서로 다른 감정과 세계가 만나는 지점,
대화가 시작되는 자리.
말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다가가려는 선택을 합니다.
이 작품은 차이를 넘어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시작되는 성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노란 삶. Life in Yellow
2026 · 72.7 x 60.6 cm (20호)
SOLD OUT
이 작품에서 세계는 느려지고, 더 고요해집니다.
해바라기들은 빛을 향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노란 들판 속, 부드러운 숨결 같은 공간 안에 사자가 숨어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나서지도,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그의 힘은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바라기는 그에게 가면이 아니라 집이 됩니다 —
경계를 내려놓고, 그저 존재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의 시선은 왼쪽을 향합니다.
관람자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이미 지나간 시간과 기억이 머무는 곳을 바라봅니다.
그는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 그저 바라보고 받아들입니다.
멀리 있는 집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곳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여기 존재합니다 —
따뜻한 공기 속에, 들판의 숨결 속에, 이 고요한 순간 안에.
파란색과 노란색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함께 존재합니다 —
깊이와 따뜻함처럼, 고요함과 삶처럼.
이 그림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힘이 잠시 멈추고, 고요함을 선택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U & Sun
2026 · 30 x 30 cm
이 작품은 '당신(U)'과 '태양(Sun)' 사이의 조용한 연결을 이야기합니다.
사자는 지배나 힘이 아닌, 생명을 품은 평온한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태양을 닮은 갈기는 세상을 부드럽게 비추며 따뜻한 빛을 전합니다. 사자의 몸과 하늘에 피어난 하얀 꽃들은 평화와 균형, 그리고 조화를 상징합니다. 이는 진정한 힘은 고요한 마음에서 피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꽃 모양의 구름들은 이 평온한 빛에 응답하듯 하늘을 수놓으며, 가장 밝은 빛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집을 품고. Carry your Home
2026 · 27.9 x 21 cm
집은 언제나 어떤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삶이 어디로 우리를 이끌든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빛입니다. 작은 집은 평안과 추억, 그리고 소속감을 간직한 내면의 안식처를 상징합니다. 소는 따뜻한 마음과 인내, 풍요, 그리고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힘을 나타냅니다. 태양을 닮은 해바라기는 희망과 빛, 보호, 그리고 삶의 길을 비추는 내면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옥수수밭은 성장과 감사, 풍요로움, 그리고 시간과 정성, 인내 끝에 맺는 결실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상징은 진정한 집은 뒤에 남겨두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함께 자라며 어디를 가든 우리와 동행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바람과의 대화. Speaking with the Wind
2026 · 27.9 x 21 cm
이 사자는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해바라기가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듯, 이 사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갑니다. 바람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바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꽃잎 하나하나는 말없는 대화 속 작은 한마디가 되어, 사자와 바람을 이어 줍니다.
푸른 몸은 하늘의 평온함을 품고, 노란은 태양의 따뜻한 생명력을 담고 있습니다. 하늘의 고요함과 태양의 온기가 하나가 되어, 진정한 강함은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움직이고, 귀 기울이며, 함께 성장하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은 바람과 태양, 그리고 모든 생명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조용한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장 순수하게 '나다웠던' 순간이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의 호기심과 감정을 따라 자유롭게 웃고, 뛰고, 넘어지며 세상을 마주했다. 그러나 세상은 정형화된 기준에 따라 나를 평가하기 시작하고, 나는 그 시선과 기준을 의식하며 조금씩 나를 그들에게 맞춰간다. 그렇게 타인의 기대와 사회가 만든 기준에 사로잡힌 채, 본래의 '나'는 점차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가장 순수했던 순간의 '나'가 아닐까.
Resilience
2026 · ( 72.7 x 53 cm )
나는 오랫동안 실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왔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실패는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망설이게 만드는 존재였다. 하지만 실패를 마주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나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패라는 두려움이 깊이 박혀들 때마다, 나는 그것을 아름다운 흔적이자 성장의 증거로 바라보는 힘을 갖게 되었다.
I place great importance on fingers. They allow me to write, to make, and to physically engage with the world. More importantly, fingers are the tools through which I draw.
Through my fingers, I am able to bring internal thoughts, emotions, and sensations—things that are not yet fully formed in language—into the physical world. For this reason, I see fingers not simply as a part of the body, but as a bridge that connects my inner world to external reality.
In this work, I aimed to visualize the moment in which fingers connect the internal and the real. This idea is expressed through a transition from a two-dimensional space to a three-dimensional one. As the finger moves across this boundary, it functions as a mediator, linking the inner world with the physical space beyond it.
이성(理性)과 본능 (1/4)
voonus · SUIN (공동 작업)
2025 · 50호
SOLD OUT
This work came out of a conversation about reason and instinct between my friend Suin and me. To me, the two feel like completely opposite ideas. However, I think one of the strengths of art is that it can express both at the same time. Because of that, we decided to place them together within a single work.
In this piece, we used complementary colors—yellow and blue—and expressed the area where they overlap as green. The yellow area contains images and marks drawn purely by instinct, without planning or control.
이성(理性)과 본능 (2/4)
voonus · SUIN (공동 작업)
2025 · 50호
SOLD OUT — 경매 낙찰
This work came out of a conversation about reason and instinct between my friend Suin and me. To me, the two feel like completely opposite ideas. However, I think one of the strengths of art is that it can express both at the same time. Because of that, we decided to place them together within a single work.
In this piece, we used complementary colors—yellow and blue—and expressed the area where they overlap as green. The yellow area contains images and marks drawn purely by instinct, without planning or control.
이성(理性)과 본능 (3/4)
voonus · SUIN (공동 작업)
2025 · 50호
This work came out of a conversation about reason and instinct between my friend Suin and me. To me, the two feel like completely opposite ideas. However, I think one of the strengths of art is that it can express both at the same time. Because of that, we decided to place them together within a single work.
In this piece, we used complementary colors—yellow and blue—and expressed the area where they overlap as green. The yellow area contains images and marks drawn purely by instinct, without planning or control.
이성(理性)과 본능 (4/4)
voonus · SUIN (공동 작업)
2025 · 50호
This work came out of a conversation about reason and instinct between my friend Suin and me. To me, the two feel like completely opposite ideas. However, I think one of the strengths of art is that it can express both at the same time. Because of that, we decided to place them together within a single work.
In this piece, we used complementary colors—yellow and blue—and expressed the area where they overlap as green. The yellow area contains images and marks drawn purely by instinct, without planning or control.
이 작품은 저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시절부터 품어온 하나의 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캔버스 속 소녀는 무너진 세계의 끝, 절벽 위에 홀로 서 있습니다. 발 아래는 부서진 잔해들로 가득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저 너머의 빛을 향해 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황금빛과 붉은 형상들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엉킨 감정,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오랫동안 확신 있게 꺼내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주변의 기대와 현실적인 걱정들이, 마치 그림 속 잔해처럼 제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처음으로 용기를 냈고, 그때부터 제 안의 꿈은 선명한 빛으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그림 속 소녀는 그때의 저입니다. 무너진 것들을 등지고, 아직 다다르지 않은 빛을 향해 첫걸음을 떼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옷자락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나온 것들을 하나씩 놓아 보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온전한 지지 없이 홀로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절벽 끝에 선 것만큼이나 아득하고 두려운 일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제 안에 있는 재능과 열정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말로 설득하는 대신, 제가 얼마나 이 길을 진심으로 원하고 또 잘해낼 수 있는지를 작품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제가 그 순간 느꼈던 확신과 설렘이 관람하시는 분들께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가장 잘 아시는 분들께도 함께 전해지길 바랍니다.
Rest in kid
Jen · Sean (공동 작업)
2026 · 162.2 × 112.1
Rest in Kid
어렸을 때는 이상한 색을 고르는 데 이유가 없었습니다.
호수는 꼭 파랄 필요가 없었고, 나무가 보라색이어도 틀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색은 그저 상상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정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풀은 초록색으로.
틀리지 않는 색을 고르고,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때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이 호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색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한때 자유롭게 상상했던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그 가장자리에는 시간이 흘러도 조용히 살아남는 이끼가 자라나고, 그 안에서는 굳어버린 손들이 물 위를 향해 뻗어 있습니다.
그 손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끝내 붙잡지 못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이미 석고처럼 굳어버린 시간은 다시 움직이지 않습니다.
물 위로 겨우 얼굴의 절반만 드러낸 인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마음 한편에는 어린아이가 숨 쉬고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이미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으로 굳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조형들은 모두 흰색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색을 잃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정말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세상이 정한 색이 아닌 자신만의 색을 고르고 싶은 아이가 조용히 손을 뻗고 있는 걸까요.
Rest in Kid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아직 잠들어 있는 그 아이가, 정말 사라진 것인지 묻는 작품입니다.
어쩌면 죽은 것은 어린 시절이 아니라, 상상하는 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Passion Unbound by Definition
2026 · 55size
이 작품은 ‘정상’이라는 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의는 오간자로 만들어, 따뜻하고 생명력 있는 색— 주황, 노랑, 붉은빛이 마치 불꽃처럼 흘러내리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제 안에 있는 열정과 생동감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담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몸통 앞쪽 허리 부분에는 단단한 에폭시를 사용했습니다. 부드럽게 흘러야 할 자리에 놓인 이 딱딱한 소재는, 저를 가로막는 무언가를 상징합니다. 저의 열정과 생명력이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부딪히게 되는 주변의 기대와 현실적인 걱정들입니다.
하의는 트윌 원단으로 만든 항아리 형태의 스커트입니다. 보통 치마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퍼지는 실루엣을 상상하게 됩니다. 저는 그 익숙한 상상에 의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왜 치마는 퍼져야 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왜 어떤 형태는 ‘정상’이라 불리고 어떤 형태는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가.
저는 제가 선택한 길이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는 이유로, 흔들리는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묻고 싶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정말로 나쁜 것일까요.
이 옷은 그 물음에 대한 저의 대답이자, 동시에 계속되는 질문입니다. 단단한 것에 갇혀 있어도 그 안의 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익숙한 형태를 벗어난 자리에서도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안녕, 나의 착한 유령아.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나이가 들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삶의 시련을 겪으며 우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동심을 상실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본 작업은 그 순수함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곁을 맴돌며 우리를 지켜주는 선한 유령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역설에서 출발한다. 본 작품에서 ‘선한 유령’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전시장에 구현된 유령과 마주하며 , 스스로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가장 순수하고 날것같았던 시절의 자신과 조우한다. 작가는 어렸을적 꿈이 유령이 되는 것으로, 이런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가닿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GHOST 1
2026 · 50cmx50cm
안녕, 나의 착한 유령아.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나이가 들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삶의 시련을 겪으며 우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동심을 상실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본 작업은 그 순수함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곁을 맴돌며 우리를 지켜주는 선한 유령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역설에서 출발한다. 본 작품에서 ‘선한 유령’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전시장에 구현된 유령과 마주하며 , 스스로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가장 순수하고 날것같았던 시절의 자신과 조우한다. 작가는 어렸을적 꿈이 유령이 되는 것으로, 이런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가닿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 시절 비가 오는 날은 두꺼비 집을 만들었다 그 촉촉한 흙모래 질감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두꺼비 집을 만들 때 부르는 노랫소리가 기억난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녀 한참 그때는 새집이 필요한 듯했다 그 두꺼비 집을 만들면서 부르던 노래가 어린 시절의 결핍과 결합되어 보여서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고무딱지맨
2025 · 50cm X 90cm
SOLD OUT
한창 딱지를 칠 때 난 너무 좋았습니다 놀이터와 딱지만 있어도 몇 시간씩 놀던 제가 너무나 변해 있던 거 같습니다 어딜 가도 흥미를 못 느낄 때도 많아지며 지금 놀이터에서 혼자 딱지를 치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보겠죠 변화가 적응이 안 되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저는 예전 기억과 추억들을 간직하고는 있데 갈망하지는 않겠다는 저의 생각이 있는 작품입니다
순환
2026 · 75cm60cm
나무가 죽으면 버섯이 자라납니다 버섯은 그 나무를 분해하며 점점 자라남니다 그나무는 다시 흙이 되어있을껏이고 거기에선 새로운 새싹이 피어납니다 그새싹은 다시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듭니다
매미
2026 · 50호
저는 성적인 사랑은 여름밤 짝짓기를 하기위해 계속 목이 찢어질듯 매미가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결국엔 진실된 짝을 못찾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공감과 배려 부터 시작을 한다면 매미도 짝짓기를 원없이 할수잇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아직 어둡고 복잡한 현실보다 아름답고 따뜻한 것들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현실의 그늘을 알기 전, 눈앞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어린 시절의 동심을 표현한다.
화면 속 꽃들은 또렷하고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어딘가 서툴고 모호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는 아직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완전한 형상을 상상해 내기 어려운 아이의 한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미완성처럼 보이는 꽃의 모습은 부족함이 아니라,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과 순수한 시선의 흔적이다.
《꽃밭》은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아이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성장하며 잊어버린 순수한 시선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호기심
2026 · 80 × 90cm
이 작품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곧 순수함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아직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아이에게 모든 것은 새롭고 낯설며, 끊임없는 질문과 놀라움의 대상이 된다. 작품은 아이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하나씩 받아들이며 세계를 알아가는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다.
화면 속 아이의 시선은 관람객의 눈높이와 맞닿아 있다. 아이와 관람객이 서로를 바라보는 구도를 통해, 아이가 세상을 궁금해하는 동시에 관람객 역시 아이의 내면과 시선을 궁금해하는 상호적인 호기심을 나타냈다. 인물 주변을 떠다니는 원형의 형상들은 아이의 세계에 새롭게 들어오는 지식과 경험의 조각들을 상징한다.
강렬한 보색의 대비는 완전한 앎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낯선 지식이 채워질 때 느껴지는 이질감과 혼란, 경이로움을 시각화한다. 《호기심》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모험
2026 · 72.7 × 40cm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사촌들과 함께 산속을 누비며 보냈던 기억에서 출발한다. 당시의 산은 익숙한 생활 공간이면서도,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모험의 세계였다. 숲속에서 마주쳤던 야생동물과 낯선 흔적, 새로운 길을 발견했던 순간들은 어린 시절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작품 속 의상은 그때의 나를 하나의 ‘모험가’ 캐릭터로 재구성한 결과이다. 과장된 형태와 자유롭게 늘어진 장식, 서로 다른 감각의 재료들은 산속을 탐험하며 느꼈던 긴장감과 설렘, 어린아이의 거침없는 상상력을 표현한다. 원시적인 분위기의 드레스는 정해진 규칙보다 본능과 호기심을 따라 움직였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상징한다.
《모험》은 단순한 추억의 재현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던 어린 시절의 나를 열정적인 모험가의 모습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모양 맞추기 장난감은 아이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익숙한 도구다. 이 작업은 그 장난감의 구조를 가져와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꾼다.
아이들이 가벼운 블록을 맞추며 즐거움을 느끼는 대신, 이 작업에서 관람자는 무거운 고철 덩어리를 들어 올리고 정해진 형태의 구멍에 반복해서 끼워 넣어야 한다. 블록이 들어가는 구멍은 모두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로 만들어져 있으며, 놀이를 위한 행위는 점차 무게와 부담을 가진 노동의 움직임으로 변한다.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해 손을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서로 다른 현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을 하나의 장면 안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 작업은 우리가 쉽게 소비하는 물건들 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어린 손들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놀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 사진 준비 중
Innocent Child
2021 · 36 x 36
모양 맞추기 장난감은 아이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익숙한 도구다. 이 작업은 그 장난감의 구조를 가져와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꾼다.
아이들이 가벼운 블록을 맞추며 즐거움을 느끼는 대신, 이 작업에서 관람자는 무거운 고철 덩어리를 들어 올리고 정해진 형태의 구멍에 반복해서 끼워 넣어야 한다. 블록이 들어가는 구멍은 모두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로 만들어져 있으며, 놀이를 위한 행위는 점차 무게와 부담을 가진 노동의 움직임으로 변한다.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해 손을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서로 다른 현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을 하나의 장면 안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 작업은 우리가 쉽게 소비하는 물건들 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어린 손들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놀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g